러시아에서의 한국학과 한국어 교육
 

드미트리예바 (Valentina N. Dmitrieva)
러시아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 교수, 언어학박사

1. 러시아에서의 동양학 발전

러시아는 다민족 국가이며 여러가지 민족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다. 게다가 또 국토도 넓고 방언도 많다. 그것이 우리 나라 언어학자들이 각종 민족어 연구에 주의를 집중하는 첫째 이유다.
러시아 국경의 남쪽에 중근동 나라와 극동 나라들이 위치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러시아는 동방 나라와의 경제적, 정신적인 연계가 있어서 수세기 동안 동방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역사적인 연대기와 성지를 순례하던 사람의 여행수기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하여서 뿐 아니라 시리아, 이집트, 시나이반도 등에 대한 흥미를 끄는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
1466-1472년간에 아파나시 니키틴(A. Nikitin) 상인은 먼 인도에 다녀와서 경탄할만한 ≪머나먼 해외여행≫이라는 여행기를 썼다. 이것은 유럽 사람들의 인도여행 중 가장 긴 여행이었다. 그 때에 러시아 상인, 여행자, 순례자들이 얻어낸 지식은 동방 나라의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러시아에서 동양학이 세워져가고 있었다.
18세기 초에 동방 연구는 목적 지향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동방어를 배우기 위한 특별 학교를 개설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1716년에 회교 성전인 ≪코란≫이 처음으로 노어로 번역되었다. 아라비아어, 터키어,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하여 외국(터키와 이란)으로 청년들을 유학시켰다. 바로 그 시기부터 동방의 역사, 종교, 화폐학, 언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맨 먼저 아라비아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과학원에 동방 언어를 잘 하는 외국인들이 초대되었다. 외국인들 중에 아라비야말, 페르시야말, 터키말을 잘 아는 게오르기 께르(1692-1740)가 동방 언어 교육을 위해 초대되었다. 교사는 1733년에 ≪러시아에서 동양학과 동방언어 협회≫의 창설과 관련된 기획을 창시하였다. 동방어를 말할 수 있는 통역원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 관리들이 동방 나라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하고 그 나라의 역사적 문헌도 연구하여야한다고 강조하였다.
19세기 후반기에 모스크바, 카잔, 하리코프 대학교들에 설립된 동양학 센터가 학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 동양학의 중요한 특징은 동방 민족들이 세계 문명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데 있으며, 동방 문화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동양학은 일련의 문화분야에서 동방의 수위와 깊은 인도주의를 인정하여왔다.
러시아의 한국학에서도 이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우리 나라는 극동지역에 대한 지식이 중국부터 비롯되었다. 1618년에 러시아 여행가 페틀린은 (Petlin) 중국여행 보고서를 썼다. 러시아 대사 바이코브(Baikov), 스빠파리(Spafary)는 중국여행기를 섰다.

2. 러시아에서 한국학 발전의 초기

17세기 후반기에 극동지역을 여행한 러시아 및 외국 학자들 보도, 중국에 파견된 러시아 공사관원들의 보도에는 한국에 대한 최초의 정보가 있었다. 17-18세기에 중국에 체류했던 러시아 정교사단원은 한국을 ≪개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왔다. 1711년 표트르 1세 시기에 북경에 최초 러시아 정교사단이 설치되었다. 1808년부터 14년동안 북경에 체류했던 야킨프 (Yakinf-Bichurin) (1777-1853)승원관장은 우리 나라의 동양학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는데 수많은 학술적 업적 외에 중국의 작품을 노어로 번역했으며, 여러 고대 한국가, 중국어로 ≪쟈어샨≫이라고 하는 조선왕국에 대한 학술적인 서술이 포함되어있다.
1820년부터 북경 러시아정교사단원인 팀코브스키(Timkovskiy) (1790-1875)는 북경에서 2번 한국인과 만나게 되었다. 1835-1840년에 북경 러시아 정교사단의 선두에 선 체스트노이(Chestnoy)는 자기 손으로 쓴 ≪중국과 동아시아 나라의 역사≫의 번역이 있으며, 4권의 공책에 ≪한국의 역사≫ 에 대한 서술이 있다.
18세기말-19세기중엽 기간에 러시아 동양학자들은 아시아 국민의 171개의 언어의 다민족어 사전을 편찬하였는데 그 사전에 노어글자로 쓴 한국어 단어들도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 승원관장인 팔라디-카파로브 (Palladiy-Kafarov) (1817-1879)는 푸질로 (Puzillo ) 사제에게 ≪노-한 사전 시도≫를 편찬할것을 충고하였다.

3. 실제적인 한국학의 형성 시기

19세기에 러시아의 동양학 연구는 서구에서보다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 한국학도 이 시기에 현저한 업적을 달성하였다. 19세기 하반기 부터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점증하던 관심은 1884년에 양국 간에 통상 조약이 체결된 후 더욱 더 커졌다. 고대사의 나라이며 풍부한 문화 전통의 나라인 한국에 대한 연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게 되고 다방면적인 학술 연구가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는 동양학의 개별적인 분야로서 한국학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19세기말에 러시아의 많은 학자들은 한국 여행에 대한 학술 논문을 발간하였다. 이 시기에 외국인들이 집필한 한국에 대한 여행수기, 감상문, 사전이 노어로 번역되었다. 19세기말에 ≪향기로운 봄≫이라 명명된 ≪춘향전≫이 불어로 부터 노어로 번역되었다. 본 작품이 중국어로 부터 번역되었다는 표기가 있었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한국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유명한 동양학자 겸 중국 상해 항구 주재 러시아 영사 드미트리예브스키(Dmitrievskiy) (1851-1899)는 중국어로 부터 ≪자어샨 지≫라는 작품을 노어로 번역하였다.
동양학자의 마지막 노작은 조선 시대 한국의 국가구조를 연구하기 위한 가치가 높은 사료이다. 이 노작은 18세기 한국의 고대 문헌인 ≪대전통편≫을 토대로 한 것이다.
한국의 연구에 대한 책들 중에 러시아 외무성 아시아국의 포지오( Pojio) (1850-1899)가 쓴 ≪한국에 대한 수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외교관은 1880년대에 많은 중국서적과 일본서적을 연구한 결과에 한국에 대한 지식을 종합한 것이다. 노어로 발간된 이와 같은 성격의 책들 중의 첫 번째 저술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는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 (Karl fon Weber )북경주재 대리 공사는 1883년에 한국 정부 대표자들과의 접촉을 시작하였다. 1884년에 러시아-한국간의 최초의 조약에 서명하였다. 대리공사는 한국어에 관한 몇가지 논문 ≪한국에 대하여 그리고 한자어 한국어로 발음에 대하여≫, ≪한국의 모든 도시 명칭에 대한 실험적 어음 전사법≫을 집필하였다.
1867년, 1869년의 북한지역의 재해로 인하여 약 400명의 한국인들은 러시아 극동지역에 이주하게 되었는데 러시아 사제들은 한국 어린이와 성인들에게도 노어 교육을 보장하도록 노력하였고 어린 고아에 대한 배려를 베풀고 한인에게 의료를 베풀었다. 1911년-1913년에 극동에서 한국어로 된 그리스도교의 ≪대한인 정교보≫가 발행되었다. 북한의 여러 지방의 이주민들은 서로 다른 방언을 말하면서 점점 함경도의 여러 방언을 기초로 하여 통합된 공통어인 ≪고려말≫이 형성되었다. 한인 이주민들을 위한 사전과 교재를 창작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한국어 문제를 해결하면서 연해주 관리국의 직원 푸질로(Puzillo)(1845-1889)는 한인교육 담당자로 인정되었고 이주민들을 돕기 위해 수천개의 단어가 수록된 사전에 노어 전사(Transcription) 노어해석이 곁들여 졌다. 이것은 유럽에서 외국어-한국어 사전들 중 최초의 실용한국어사전이었다. 바로 유럽어로 된 그 사전으로부터 한국어 사전편찬학이 시작되었다. 극동에서 편찬된 사전은 1874년에 상뻬쩨르부르그에서 발간되었는데 그 사전의 언어학적 가치는 19세기 하반기의 실용 한국어의 동북방언인 함경도 및 평안도의 어휘와 음성이 반영된 것이다.

4. 19세기말-20세기초 러시아 한국학 기본 중심지

19세기부터 러시아에 3개의 한국학 중심지가 창설되었는데 제일 먼저 상뻬쩨르부르그 국립 대학교 동방언어학과에 1897년에 한국어과가 개설되었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선택과목으로 한국어 교육이 지정되었으며, 먼저 반년간 민경식 교사가 한국어를 가르쳤고 같은 해 10월부터 상뻬쩨르부르그 주재 한국 공사관의 통역원인 김병옥 교사가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교양있는 귀족출신인 김병옥 교사는 1907년까지 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두 가지 교재: ≪춘향전을 포함한 한국어 원본≫ (1898, 62장), ≪한국어 학습교재≫(1899, 48장)을 편찬했다. 이 교재는 러시아인을 위한 첫번째 한국어 문법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문법서는 1897년에 리봉운이 쓴 ≪국문정리≫를 제외하면 한인이 집필한 가장 오래된 ≪한국어 문법≫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은 정규과목이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정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요청이 여러번 제기되었지만 수십년간에 상뻬쩨르부르그에서 한국어 교육이 재개되지 않았다. 1917년, 시월혁명 후에 우리 나라 고등교육기관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맥이 끊겼다. 다만, 상뻬쩨르부르그 국립대학교에서 1947년에 홀로도비치 (Kholodovich ) 교수는 한국어 교육의 기획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말에 러시아 극동에 동방국가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 중심지가 생겨났다. 극동국립대학교는 우리 나라의 극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기관이며 러시아의 동양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대학교이다. 이 연구교육기관의 역사는 1899년 10월 21일, 즉 동양대학이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대학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아태지역의 국가들의 언어, 역사, 문학, 민족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여왔다. 1900년에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이 동양대학에서 한국어 강좌가 설치되고 상뻬쩨르부르그 국립대학교 몽골과의 출신인 유명한 러시아 동양학자 포드스따빈 (Podstavin ) (1875-1924)교수가 강좌장으로 임명되고 1920년까지 한국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기초로 한 실용적인 한국어 교육을 지도하면서 대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교안 및 많은 교재를 집필하였다.

5. 소련시대의 한국학과 한국어 교육

20세기초 러시아에서 유명한 언어학자인 폴리바노프( Polivanov) (1891-1938)박사는 한국어 음성학 연구에 학술적인 관심이 있었다.
소련시대 한국어 학파 선구자로 인정받는 상뻬쩨르부르그 국립대학교의 홀로도비치 (Kholodovich ) (1906-1977) 교수는 30년대에 모스크바동양대학에서 한국어 문법 강연을 하였다. 1937 년에 ≪한국어 문법 형태론≫에 대해 필자가 쓴 문서가 280부가 나왔다. 이것은 러시아에서 최초의 한국어문법서였다. 1954년에 발간된 교수의 저서 ≪한국어 문법 개론≫은 러시아어로 쓰여진 한국어 문법서들 중에서 아직도 학술적 가치를 잃지 않은 유일한 책이며 홀로도비치 교수가 처음으로 편찬한 ≪한-러 사전≫ (초판 1951년, 재판 1958년)은 가장 많이 이용되는 사전편찬학적 참고서이다. 교수의 논문에는 한국어 문법의 여러 문제가 처음으로 현대언어학의 관점에서 제기되어있다.
호로도비치 교수의 제자 및 후계자들은 러시아 한국학의 제 2 세대를 대표한다. 소련시대에 두 가지 한국학파가 형성되었는데 상뻬쩨르부르그 학파는 홀로도비치 교수의 제자들이었다. 상뻬쩨르부르그 국립대학교 출신인 라치코프(Rachkov), 바실리예프 (Vasiliev I.G. ), 박 게.아. (Park K.A. ), 니키티나 (Nikitina ), 트로쩨비치 (Trotsevich) 교수는 한국 어문학의 이론적 연구를 전공한 학자이다. 모스크바 동양대학과, 모스크바국립대학교의 출신인 니꼴스끼( Nikolskiy)박사, 마주르(Mazur )박사, 꼰체비치 (Kontsevich)박사, 드미트리예바(Dmitrieva )교수 및 기타 학자들은 모스크바 학파를 형성하였다. 그 학파는 주로 응용 언어학인 교과서, 교재, 사전 편찬을 전공하면서 이론적 인 면에도 관심이 있다. 특히 꼰체비치 박사는 수 많은 이론적인 논문들을 쓰고 2001년에 ≪한국학 론총 (韓國學 論叢)≫을 발행하였다. 특히 한국어 음성론을 연구하면서 많은 학술 논문을 발간하였다. 한국의 역사적 문헌인 ≪훈민정음≫의 깊은 분석은 한국언어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학 발전 역사 연구에 큰 주의를 돌리면서 동시에 러시아 동양학 역사도 깊이 연구하고 있다.
우리 나라 한국학 제 2, 제 3세대의 학자들 중 많은 연구자들은 홀로도비치 박사의 이론과 견해를 발전시킬 뿐 아니라 스스로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하여 한국어학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였다.
1945년 8월말에 아시아 극동에서 역사적 전환이 일어났는데 한반도가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었다. 그 시기에 모스크바동양대학에서 새로운 한국학과가 설립되었는데 1945년 9월부터 소련에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필수과목으로, 정규교 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소련에 한국어를 아는 전문가들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1945년부터 현대 한국학, 현대 한국어 연구와 교육이 본격화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련에서 처음으로 한국학의 정규적인 전문 교육이 실시되었다. 황동민, 한득봉, 황융준 선생님들은 한국어를 가르쳤다. 대학생들은 한국의 역사학, 문학, 지리학도 배우고 극동지역의 경제학, 철학, 종교학도 배웠다. 1945년 첫 번째로 19명의 남녀 대학생이 입학했다. 5년이 지나서 12명의 졸업생은 한국학 전문가가 되었다. 2명의 졸업생: 마주르 박사와 본인은 모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학위논문을 쓰고 한국어학자가 되었다. 다른 졸업생들도 평생 동안 한국학 부문에서 방송기자, 사전 편집자, 한국서적 번역원, 한국어 교사로 종사했다.
1947년에 레닌그라드 (상뻬쩨르부르그)국립대학교 동양학부에서 한국학과가 두 번째로 설립되었다. 1952년의 첫째 졸업생들 중의 어문학 학자도 많다. 그 대학교의 출신 카플란(Kaplan ) 교사는 1975년에 블라디보스토크시 극동 국립 대학교 동방학부에 한국학과의 설립자가 되었다. 1995년에 한국학과가 한국학의 단과대학으로 되었다. 한국 언어학자 베르홀랴크(Verholiak ) 박사는 이 고등 교육 기관을 이끌었다. 현재 사할린, 하바롭스크, 톰스크 및 기타 러시아 고등 교육 기관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다.

6. 한국어 교과서, 교재

1945년에 모스크바 동양대학에서 현대 한국어를 처음으로 기본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우리 나라에 교과서나 사전이 없어서 교육과정이 매우 복잡하였다. 대학생들은 칠판에 쓴 문장을 베끼게 되어, 한국어 문법책이나 교재가 없어서 교수의 설명을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다.
본인은1948년에 처음으로 북한에서 한국어를 연수했으며, 처음으로 러-한 사전을 보았다. 그 사전은 소련 외교관인 샤브쉰(Shabshin )이 편집하였다. 그 밖에 박상준씨 저 새 ≪조선어 문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부터 대학생들은 사할린에 있는 중학교용 교과서를 기본 교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교육과정에 맞지 않고 내용과 형식상으로 적철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1950년대초에 한국어 강좌 교수들이 대학생들을 위한 기본 과목에 필요한 교재를 집필하면서 한국어를 교육했다. 본인도 모교에 교수로 부임한 직후 교재 집필 작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아는 바와 같이 러시아에서 1945년부터 1990년까지는 북한의 조선어만 연구, 학습할 수 있었다. 평양에서 받은 ≪조선어 문법≫, ≪조선어 사전≫,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잡지의 기사를 교재로 사용하면서 한국어 어휘와 문법의 특징을 연구하였다. 그 시기에 우리 교수들이 집필한 교재들은 모두 북한의 어휘, 언어규범에 주로 의존했다.
러시아에서 집필한 교재들이 대학 교육과정에 알맞고 한국어를 노어문법과 대비하고 대학생들의 일반 언어 지식을 고려하면서 한국어 문법설명을 하는 원칙을 기초로 하였다.
러시아의 한국학에 본질적인 전환은 1990년 9월에 소련과 대한민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 일어났다. 지난 10여 년 간 우리는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고 학자 교류와 상호 협력의 분야가 훨씬 확대되었다. 바로 1990년부터 러시아 한국학 발전의 새로운 시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초빙교수로나 교환 교수로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고 대학생들은 언어 실습을 할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국으로부터 교육과정에 요구되는 교재들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어 교육과정을 더 합리적으로 다양하게 개편하고 개선할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10년간에 모스크바에서 뿐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새로운 한국어 교과서가 나왔다.
현재 러시아의 한국어 학자들이 한국어에 대한 연구보다는 실용적인 면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어 이론과 기본 사상은 그다지 큰 변화를 겪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보급되어 왔다. 한국어 이론 연구에 대한 논문이 대학에서 발행되는 ≪학술논문집≫에 게재된다.
최근에 와서 한국어의 급격한 발전, 변화로 말미암아 1960-1980년대에 발행된 교재가 현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남한의 표준어를 기초로 한 여러가지 교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한국어 문법, 특히 문장론 (복합문의 성분), 현행 한국의 문체론에 대한 참고서가 요구된다. 한국어를 더 깊이 연구할수록 더 많은 문제가 생긴다.
이제 한국어 연구의 제일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는 남북한 언어 이질화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교육 과정에서 그 이질화의 특성을 어떻게 분석해야하는가 하는 것이다. 남한 어휘와 북한 어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외래어 사용문제이다. 고유어와 한자어의 사용 규범을 분석하는 것은 외국인에게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남한과 달리 쓰이는 북한 어휘를 설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한국어 교육 과정에 남북한 어문 규범 차이에 주의를 돌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이와 병행하여 한국어 현행 문체를 연구하여야한다.

7. 한국어교수법에 대하여

학술적인 논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논의하는 과정에서 진리가 도출된다≫는 속담처럼, 언어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학술적 논쟁은 외국어를 가르치는 방법론을 창안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에서는 1930년대부터 중학교 교사, 교수 및 언어학자들이 민족어와 그리고 외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저명한 언어학자이며 과학아카데미 회원인 쉐르바(Sherba)는 언어의 비교연구에 근거한 외국어 교수법에 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교수법의 근간을 이루는 대부분은 비교문법인데, 즉 이것은 문법이 민족어의 특징을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교수법을 선택하는 것은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는 조건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예를 들면, 한국어를 한국에서도 공부할 수 있고 러시아에서도 공부할 수 있지만, 조건은 매우 다르다. 그밖에 초등학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조건과 대학교에서 성인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조건 또한 같을 수가 없다. 대체로 인간의 언어 사용능력은 어려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일생동안 모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외국어 교육과정이 진행될 때에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그 과정의 주체이자 능동적인 참가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즉, 효율적인 외국어 교육은 바로 그 외국어를 습득하려는 학생의 기억력, 재능 그리고 그의 언어학적 능력과 자질, 심리적인 상태에 많이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초, 중, 고등학교 교사들과 교수, 그리고 교과서 편찬자들은 그 모든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어떤 요소들은 학생이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언어를 보다 빨리 습득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는 요소들이 많다는 것이다. 생활환경은 외국어를 습득하는데 기본적인 촉진 요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심리적인 요인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첫 단계에서 중요한 과제들 중 하나는 가장 적절한 교육방법론을 선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 단계의 성공여부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어를 가르쳐오면서 첫 단계에서 많은 유럽 학생들이 ≪심리적인 장애물≫을 극복하는 모습을 직접 보와 왔다. 그 심리적인 장애물이란 학생들이 처음으로 새로운 언어 체계를 습득하면서 외국어의 문법적 논리를 이해하는데서 발생하는 어려운 상황들을 의미한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생각되는 것은 모국어와 다른 새로운 문법 체계이다.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학생들은 새 문법의 체계를 습득하기 전에 그 문법의 체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모국어에 대한 언어 습득이 이루어진 후 또 다른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선천적 능력이라 기보다는 후천적, 인위적인 능력에 의해 가능하다. 이 때 습득 대상 언어에 대한 문법적 특징, 즉 모국어와의 차이점이나, 유사성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수십 년 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어를 배울 때 모든 학생들이 동일하게 ≪언어적 장애≫를 극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학생의 모국어의 문법체계에 좌우된다. 몽골, 헝가리, 따따르 민족의 학생들은 러시아 혹은 다른 슬라브 민족 학생들 보다 수월하게 한국어문법을 이해하면서 보다 쉽게 습득한다. 왜냐하면 러시아어와 비교해 볼 때 이들의 문법체계는 한국어와 유사점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학생들이 모국어의 문법체계에 대한 지식을 학습과정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교수로부터 외국어를 처음 듣고 어학 실에서 반복 학습을 하거나, 교과서, 사전, 참고서를 이용하면서 외국어를 배우게 되는데 학습하는 과정은 시간표에 따라서 매우 제한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교과서와 교수법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연세 대학교 김석득 교수는 ≪말의 효율적인 교육은 훌륭한 선생, 과학적인 교육방법과 좋은 교재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한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자하는 것은 심리학적인 요인이다. 외국어 교육 과정을 심리학적 측면으로 보면 다른 과학 연구과정과 현저하게 다르다.